roll001: 첫 롤
영국에 와서 항상 주말에 하는 일이 생겼는데 바로 마켓을 찾아다니는 일이다. 입문자(?)에게는 관광객들에게도 많이 알려진 브릭레인 마켓(Brick Lane market)을 추천하는데 마켓뿐만 아니라 빈티지 상점들을 구경하는 재미가 쏠쏠하다. 나는 옛날부터 많이 관심을 가지고 있었던 필름 카메라를 구입을 위해 매달 첫째, 마지막 주말에 마켓을 찾아오는 중고 필름 카메라 스탠드를 찾았다. 영국에 몇 년 살게 될지 모르니 유럽여행도 부지런히 다니면서 나에게 의미 있는 순간이나 감동을 주는 장면들을 필름 카메라로 담아보고 싶었다.
역시 처음은 특별한 순간을 찾으려 하고 사진을 아끼게 되어서 필름 롤 숫자가 좀처럼 올라가지 않는다. 36장을 다 찍기 전까지는 앞에 찍은 사진들이 아무리 궁금해도 알 수 없다는 게 필름 사진의 매력이고 또 약속을 잡고 카메라를 들고나갈 핑곗거리가 된다.
아이러니하게도 영국에서 산 올림푸스로 열심히 한국과 일본에서 첫 롤을 채워나갔다. 필름을 끼우고 나서부터 얼마나 떨리던지 - 서른여섯 장을 찍는 동안 필름이 잘못 끼워져 있어서 사진들이 다 하얗게 나오면 어떡하나 계속 걱정했다.
일본의 색깔이 이번 필름에 잘 어울렸던 것 같다. 살짝 해가 질 무렵 하늘색은 항상 아이폰으로 담으면 2% 아쉬운데 필름은 또 다른 느낌의 감동적인 색을 잘 담아낸다.
“오이시 우도응 도꼬데스까”를 여행의 테마송처럼 외치며 런던 플랫 메이트인 J와 짠 우동을 한번, 맛있는 우동을 한번 맛보고 돌아왔다. 하루에 커피를 세 잔씩 마셔도 부족한 탓에 다음엔 꼭 여유 있게 와있어야지 했다.
아직도 생생한 볼에 뜨거운 열기와 시원한 아이스라테, 그리고 열심히 연습한 일본어 자기소개는 일본 사람을 마주하는 순간 그냥 영어로 바뀌었다는 조금은 슬픈 이야기.